2023년 6월 4일 맑음
한산도 역사길 산행을 마치고 조금 지친 발걸음으로 제승당을 다녀왔다.
1km정도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는 바다와 숲을 함께 볼수 있는 명소이며, 그 길 끝에는 국난극복의 성지이자 이충무공 사적지인 제승당이 있다.
한산도는
통영에서 남동쪽 뱃길로 2㎞ 정도 거리, 한산대첩으로 유명하다. 원래 거제현이었는데 한티·한실·한밭·한강 등 '한'은 크다는 우리말의 음차. 큰 섬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970년대를 거쳤던 한국인 가운데 한산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담배 이름까지 한산도가 있었으니, 당시에는 애국심 고취에 모든 수단이 동원됐고 일사불란했다. 거북등대와 한산대첩기념비가 세워진 것도 그 시기였다.
제승당(制勝堂)이란
'승리를 만드는 집' 이란 뜻으로 오늘날로 치면 해군작전본부라 할 수 있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수군을 총지휘하는 조선시대 관직)였던 이순신 장군은 1593년 이곳에 제승당을 세우고 군력을 정비했다. '난중일기'의 상당 부분이 바로 여기서 쓰여졌다고 한다. 본래 건물은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됐고, 그 후 142년이 지난 1739년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다시 세웠다. 그리고 1976년 재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산도행 배시간 참고
통영 한산도 역사길, 바다백리길 2구간 (tistory.com)
선착장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향한다.
철문을 지나면 길 왼쪽에 화장실이 있다.
거북선 모양의 음수대
국가지정문화재(국가 사적 제 113호) 한산도 이충무공유적지
1976년 이충무공 유적 정화사업으로 제승당을 유료화한 이후 45년동안 징수되었던 관람료는 2021년 7월 8일부터 무료개방되었다.
閑山門
해안가에는 주로 해송과 곰솔이 자라는데, 적송 군락이 있는 것은 드문 경우라고 한다.
쓰러진 나무를 철기둥으로 받쳐놓아 옆으로 자라도록 하였다.
울창한 나무들이 걷는 내내 기분좋게 한다.
아왜나무
따뜻한 남쪽지방에 자라는 아왜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불에 버티는 힘이 강한 나무로 유명하다. 즉, 방화수(防火樹)로서 널리 알려진 나무다. 한 나무씩보다 다른 나무들 사이사이에 여러 줄로 이어 심으면 더 효과적인 천연 방화벽을 만들 수 있다. 가을에는 꽃이 핀 자리에 콩알 굵기만 한 빨간 열매가 익는다. 짙푸른 녹색 잎을 바탕으로 수천수만 개의 붉은 열매가 나무 전체에 달려 있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산호를 닮았다고 하여 한자 이름은 산호수다.
조금씩 물이 들어오고 있다.
한산대첩기념비는 이충무공의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기념비에 대한 설명만 있고, 기념비는 건너편 산 위(한산면 두억리 903-1)에 세워져 있다.
멀리 보이는 한산대첩기념비. 문어포마을 입구에서 도보로 5분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반원의 灣(만) 형태의 바다
정말 감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제승당 항공사진. 요새(要塞)처럼 보인다.
우물
이순신장군께서 이 곳에 머물면서 실제 사용했던 우물이라고 한다. 옆은 투명판으로 막아 놓아 우물 안은 보기 어려워
안쪽으로 손을 넣어 찍어 보았다. 살짝 탁해 보였지만, 물은 차 있었다.
大捷門(대첩문)
해안길을 지나 이 문을 통과하면 제승당 시작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이 곳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忠武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들이다.
制勝堂(제승당)
이곳은 원래는 운주당(運籌堂) 터인데 이순신은 운주당을 집으로 사용하는 한편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당시의 운주당은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파직된 후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이후 영조 15년(1739년)에 통제사 조경이 다시 세우고 이름을 제승당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제승당은 1976년 제승당 정화 사업때 다시 지은 것이다.
제승당에 걸려있는 현판의 '제승당'은 제 107대 통제사 '조경'의 친필이고 안에 보관된 대형 현판은 140대 통제사 '김영수'의 친필이다.
명나라 신종황제가 이충무공께 내려준 8가지 물품을 말하며 그 물품을 원색 그림으로 그려 병풍으로 만들어 놓은 것
제승당 내부
한산정(閑山亭)
이충무공께서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했던 곳으로 과녁과의 거리는 145m이며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이 곳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충무공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 적응훙련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활터를 만들었다. 한산정에서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병사들은 대부분 경상, 정라, 충청 출신으로 선조27년(1594년)에 이충무공의 건의로 이 곳에서무과 특별시험을 치뤄 선발된 사람들이었다.
忠武祠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
종이품 통제사의 관복 차림의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1978년 사적을 정비할 때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이다.
내삼문과 충무사 앞뜰
외삼문을 지나면 큰 소나무들과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정화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제승당 정화사업 기념비가 있다.
경남도내 학생들의 성금으로 1948년에 세워진 한글비(왼쪽)와 홍살문
戍樓 (수루)
수루는 물가에 세운 누각(水樓)이 아니라 군대가 주둔하는 수자리(병영)에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세운 망대(망루)로 오른쪽의 고동산, 왼쪽의 미륵산, 뒤쪽의 망산을 연결한 봉화와 연 등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남해안의 왜군 동태를 파악하였다고 한다.
수루에 올라가면 한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수루 안쪽에 걸린 '한산도가 '편액
역사의 산 증인 느티나무. 꽤 오래되어 보이는데 이 나무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공덕비
나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
해송군락의 멋진 자태
5시 15분 파라다이스호 탑승 - '의항'을 경유
'의항'으로 향하는 배에서 보는 제승당
한산대첩기념비도 가깝게 볼수 있다.
돌아오는 배에서 보는 한산도. 오늘 올랐던 망산과 거북등대, 한산대첩기념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산도 제승당은 오래전 한 번 다녀왔지만, 역사길을 걷고 다녀온 오늘의 느낌은 정말 달랐다. 멋진 풍광과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에서 뭉클함까지 올라왔다. 제승당을 품은 작은 섬이려니 생각했었는데, 정말 많은 볼거리들과 아름다움이 있는 섬(통영시의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차량을 이용해 추봉도, 문어포, 한산대첩기념비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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