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찬란한 전설, 천경자 화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회 (11.11~12.31) 가 열리고 있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 다녀왔다. 남녘 땅끝 고흥에서 만나는 거장의 작품의 세계에 감동한 시간이였다.
이번 전시회는 천경자 화가의 둘째 딸 수미타 김이 총감독을 했고 전시의 주제를 '감동과 그리움'으로 잡았다. 그림 한 점 남아있지 않은 고흥군에서 둘째 딸인 수미타 김의 전시 기획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천경자 상설관'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 58점은 권미성, 김생기, 천호준, 프리마컬렉션 소장가들과 전남도립미술관, 부국문화재단 등이 대여해줬다고 한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전남 고흥군 두원면 분청문화박물관길 99 ( 061-830-5990)
주차, 관람료 무료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분청문화박물관길 99 우)59515 tel : 061) 830-5990, 5991
전시관에 가면 10시, 2시, 4시에 도슨트로도 만날 수 있다. 운영시간은 9:00~18:00,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전시는 무료 관람이다.
1층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상설 전시관이며 천경자 특별전은 2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트릭아트가 이색적인 복도
유리창 색으로 인해 조명이 더해져 나름 멋스럽다.
전시관 입구의 포스터
포스터 옆 천경자님의 환한미소와 작품들이 함께한 사진
전시회에는 길례언니 2, 정, 접시꽃, 굴비를 든 남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등의 그림과 초기 드로잉, 당시 박경리 등의 문인들과의 친필편지, 대표적 수필집, 미공개 사진 등의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약 7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천경자라는 이름은 아릿한 그리움을 의미한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 전시 '찬란한 전설 천경자' 의 총감독으로서 나는 전시의 주제를 '감동과 그리움'으로 잡았다. 이 전시는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유일한 단독 전시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삶을 구체적이고 침밀한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당시의 친필편지, 미공개 사진 등 아카이브 자료가 협주곡을 만들어내는 구성으로 꾸며졌다. - 총감독 수미타 김
정말 운 좋게도 우린 총 감독이신 '수미타 김' (천경자님 둘째딸) 선생님의 도슨트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천경자님의 삶과 예술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소한 얘기들로 한시간이 넘도록 열정을 쏟아 말씀해주셨다.
1. 길례언니
천 화백의 본명은 천옥자로 1924년 11월 11일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서문리에서 태어났다. 고흥 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광주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현 동경여자미술대학으로 유학하여 1944년에 졸업한다. 유학 중이던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로 입선했고, 1944년에는 외할머니를 그린 '노부' 로 다시 한 번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고흥시절 사진, 보통학교 통지서 등 고문서
길례언니 Ⅱ, 1982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심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한다. 일상적인 감정을 그림 속에 그대로 연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체험적인 인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꽃과 여인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면서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상징성을 내포한다. 일상적인 생활감정 뿐만 아니라, 속내를 은유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2. 청춘의 문
이번 전시에서 20여 년만에 관객과 처음 만난 120호의 대작 ‘제주도 풍경’(1956)은 소장자인 뮤지엄 산 한솔재단이 여태껏 ‘섬의 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었던 그림이다. 수미타 김은 “1956년 국전에 출품된 작품인데, 당시 기록된 조그마한 그림 사진에서 출처를 새로 알게 됐다”며 “이런 작품은 정말 귀하다”고 설명했다.
사글세로 얻어 들어간 주인집이 팔려 집에서 쫓겨나갈 판국에 그린 100호 크기의 ‘정(靜)’(1955)이 대표적이다. 천 화백은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가리켜 ‘시든 해바라기 밭에 검은 고양이를 안고 홀로 앉아있는 계집아이를 울면서 그려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이 그림은 1955년 제7회 미협전람회에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마구 울었다고 한다.
정(靜),1955
전시 구성은 7가지 주제방과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이이남 프로젝트 방이 있다. 방 순서대로 펼치면 길례언니, 청춘의 문, 꿈과 바람, 파리 시절,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자유로운 여자, 찬란한 전설의 순이다.
3. 꿈과 바람
천경자는 1962년까지 살던 누하동 집을 떠나 인왕산 자락의 옥인동으로 이사한다. 이 곳에서 비로소 최초의 화실을 갖게 된다. 2층의 3평 정도 되는 방을 화실로 삼은 천경자는 "화실이 생기니까 비가와도 반갑고 눈이 뿌려도 새롭고 즐거웠다" 라고 회상했다.
1960~70년대 전시도록, 작가 사진
만선,1971(좌측). 언젠가 그날,1969(우측)
굴비를 든 남자, 1974
4. 파리시절
1969년 유럽과 미국으로 첫 세계여행에 나선 천경자는 뉴뇩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다. 그가 파리에서 보낸 시기는 내략 1969년 늦은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로 호텔에 묵으며 아카데미 고에즈에 나가 그림을 그렸고 새로운 재료였던 유화물감과 캔버스에 익숙해진다. 당시 그렸던 유화 다섯점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중 가장 큰 그림이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누드이며 힘찬 선의 역동감이 살아있는 당시 크로키들도 함께 전시된다.
파리시절 유화누드, 1969~70
5.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전시장 한 벽면을 채운 천경자님의 아련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당시 작가의 작품이 실린 잡지들
가족에게 보낸 작가의 편지
박경리 선생님의 자필 편지(오른쪽 상단)와 함께 찍은 사진
60년대 이후 천경자는 부단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독보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자전적인 주제와 한국의 정서를 화려한 채색과 밀도 있는 질감으로 표현한 그녀는 흔히 '영혼의 화가', '색채의 마술사', '고독한 한의 작가'라 불린다.
6. 자유로운 여자
천경자에게 그림은 종교였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오지에서 불안에 휩쓸렸을 때도 화판을 꺼내 현지인이나 풍물을 스케치하면 포근한 안도감이 밀려왔다고 술회했다.
아이누여인, 1988
7. 찬란한 전설
팬지, 1973
해설중이신 수미타 김
수미타 김은 "사실 저 모습은 어머니의 얼굴은 아니다"면서 "당시 어머니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커피 한잔 드시고 작업을 시작하면 저녁 4~5시면 끝내는데 작가가 가장 행복한 것은 작업실을 떠날 때라는 헤밍웨이 말처럼 어머니도 그날 작업을 마치고 책장에 그림을 기대어 놓고 담배 한대 물고 내일을 구상을 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의 모습이 응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2019년 6월 서울옥션 152회 경매에서 8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환상여행(미디어 아트) - 이이남 프로젝트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구성한 이번 전시는 화백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현대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이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의 대표적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 여성,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테마인 고흥의 바다를 비롯한 자연과 여성성을 미디어 아트를 통해 역동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으로 승화시켜 관람객이 작품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시각적, 청각적 감동을 느낄수 있도록 한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련해진다.
대중의 큰 사랑과 함께 독창적인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말년의 천경자는 주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그의 영구 전시실이 서울시립미술관에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관람 후 '수미타김' 과 함께 기념 촬영
'천경자를 기리고 그리다' - 고흥아트센터
고흥아트센터에서는 특별전시 '천경자를 기리고 그리다'가 열리며, 천경자 화백의 초상과 작품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청년 작가 82인의 공모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고흥아트센터
천경자님, 그녀의 고향에서 만난 특별전은 정말 특별했다. 그녀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고 작품을 보게 되었고 알고보니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남았다. 어려운 여건을 무릎쓰고 고흥이라는 작은 도시에 엄청난 전시를 일궈낸 수미타김 선생님과 고흥군 관계자님들께 무한 존경을 보낸다. 너무 감사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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