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낙안읍성 민속마을

비사랑 2023. 4. 3. 11:21

다녀온 날: 2023년 4월 2일, 날씨: 맑음

 

원형이 잘 보존된 성곽, 관아 건물과 소담스러운 초가, 고즈넉한 돌담길에 이르기까지 옛 모습을 되살려 힐링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는 낙안읍성에 다녀왔다. 자주 왔던 곳이라 익숙함에서오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최근에는 MBC 드라마  '조선변호사'를 이 곳에서 촬영을 했다. 

오늘은 낙안읍성의 골목과 노거수를 눈여겨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낙안읍성민속마을 주차장

 

 

 

매표시간

1월, 11월 ∼ 12월 2 ∼ 4월, 10월 5 ∼ 9월
09:00 ∼ 17:30 09:00 ∼ 18:00 08:30 ∼ 18:30

 

관람요금

구분 개인 단체(20인이상) 비고
어른 4,000 3,000 65세미만
청소년 및 군인 2,500 2,000 ·고등학생
어린이 1,500 1,000 초등학생(7세이상)

※ 50%할인 대상지(단, 주소지 확인자에 한함)
   - 순천시민
   - 자매도시 : 서울(송파, 양천, 강서), 경기(오산), 경남(진주)
   - 협력도시 : 전남(구례, 완도)
   - 남해안·남중권 : 전남(여수, 광양, 고흥, 보성), 경남(사천, 남해, 하동)

 

낙안읍성 연혁

고려 태조 23(940) 파지성(백제시대)을 낙안군으로 개칭하였고, 조선 태조 6(1397) 김빈길 장군이 토성 축조하고 조선 인조 4~6(1626~1628) 임경업 군수가  석성으로 중수하였다.

2011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와 함께 2014 CNN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선, 2015 한국 관광 100선 선정, 2019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 2020년 한국의 열린 관광지에  선정되는 등  낙안읍성은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낙안읍성 안내도

주요관람코스

♠ 읍성안 코스

   1. 동문 → 2. 임경업장군비각 → 3. 객사 → 4. 놀이마당 → 5. 동헌 → 6. 내아 → 7. 낙민루 → 8. 낙민관 자료전시관 →

   9. 서문 → 10. 대장금세트장 → 12. 큰샘 → 13. 남문 → 14. 옥사 → 15. 연지 → 1. 동문

♠ 성곽길 코스

   1. 동문 → 9. 서문(13.남문) → 11. 전망좋은 곳 → 13. 남문(9. 서문) → 1. 동문

성곽길과 읍성 안 코스 둘 다 꼭 둘러보면 좋겠다.

 

주차장에서 동문 가는 길

 

매표소

 

동문 왼쪽,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성곽

 

 

동문(樂豊樓 낙풍루)

낙안읍성이 현재와 같은 마을로 조성된 것은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처음 태조 때 잦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낙안 태생 김빈길 장군이 토성으로 축조한 것이 수차례 붕괴가 있었고, 인조 때 돌로 다시 쌓아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성곽길을 걸었다.. 동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고창 고창읍성, 서산 해미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3대 읍성이다.

 

성곽 아래로 초가집들과 마당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

 

 

 

놀이마당

 

 

서문 입구 장승들

낙안읍성의 각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편에는 장승(벅수)과 솟대(짐대)가 세워져 있다. 장승을 마을 입구에 세우는 이유는 장승이 마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장승이 서 있는 곳은 장승배기라고 부르며 배기란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다.

장승들 뒷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화장실이다. 가까이에서조차 화장실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문

서문을 지나 성곽길에서  걸어온 길을 바라봄. 뒤로 보이는 산은 '금전산' 

 

 

성곽길 돌 틈에 핀 제비꽃

 

 

전망 좋은 곳

이 곳에서 낙안읍성이 한눈에 조망된다.

 

 

내려온 계단. 반대로 가는 사람들은 오르기 조금 힘들 것 같다.

 초가집 지붕아래 아담하게 자리한 작은 꽃밭들이 정겹다.

 

 

 

남문(쌍청루)

 

성 바깥으로 배꽃이 활짝 피었다.

 

 

연지(못)

 

 

한적한 옛 시골 풍경

 

 

저 많은 항아리들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원점인 동문

 

 

동문에서 내려와 바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만나는 홍매화 정원 

 

 

 

 

유주 (乳株) 은행나무 - 도기념물 제133호

수령600년(1990년 12월 5일 지정)

사진 화면에 다 담기지 않는 엄청난 크기

 

 

목화와 작약이 심어진 밭

 

 

 

짚으로 엮은 지붕은 1년마다 지붕을 새로 얹어 주어야 하는데 그 흔적이 보인다. (층층이 쌓인 볏짚)

 

 

깔끔하게 잘 가꾸어진 골목길이다.

 

 

 

 

낙안읍성 은행나무 - 도기념물 133호

수령600년(1990년 12월 5일 지정) - 유주 은행나무와 같은 날에 지정됨 

낙안읍성에는 마을의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나무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망르의 중앙에 있는  이 은행나무이다. 읍성 전체의 모양이 배를 닮았다고 하여 풍수지리에서는 행주형이라고 하며 그 까닭으로 마을 샘도 깊게 파지 않았다고 하는데 구멍이 뚫리면 배가 침몰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 은행나무는 돛대에 해당되는 중요한 나무이다.

 

높이 30m, 줄기둘레 약 8m가 되는 이 은행나무는 읍성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기록에는 조선 인조 4년(1626년) 임경업 장군이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한 이후로 수령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았다는 것을 보면 은행나무 수령은 훨씬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수함과 소박함이 묻어나는 초가집

 

 

대나무로 엮어 만든 대문,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낙안 도예방. 체험도 가능하고 도자기도 구입할 수 있다.

 

 

큰샘 빨래터

옛날 낙안군수(고을 수령)님이 드셨다하여 큰샘으로 불린다. 마을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읍성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읍성 전체의 모양이 배를 닮았다고 하여 풍수지리에서는 행주형이라고 하며 그 까닭으로 마을 샘도 깊게 파지 않았다고 하는데 구멍이 뚫리면 배가 침몰하기 때문이다. 낮은 곳의 우물임에도 마르거나 넘치지 않고 그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이 초가지붕 또한 멋스럽기 그지없다.

 

 

 

국악체험장

전망좋은 곳에서 내려오는 길 왼쪽으로 바로 보이는 곳이다.

 

 

대장금 촬영지

워낙 오래된 드라마라 기억이 가물가물.. ㅎ

 

 

 

개복숭아 꽃과 모과꽃(아래) 

 

 

동물체험장에는 금계, 오골계, 청계, 공작 정도가 있는데 공작은 날개를 펼치지 않고 있어 아쉬웠다.

 

 

과거로 이어질 것 같은 길

 

이 곳의 담은 돌로 쌓은 담이다.

 

 

옥사(獄舍)

낙안읍성 옥사는 그동안 폐사되었던 곳으로 2002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좌측은 여름 옥사로 우측은 겨울옥사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고 옥사주변의 담장도 어느 담장보다 높게(2.5m)쌓았다. 관아 옆에 옥사가 있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낙안읍성의 옥사는 관아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는 군수들이 선정을 베풀어 다른 지역과 다르게 성안에 흉악범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물레방아

 

 

골목길을 나와서 반대편( 객사, 동헌, 낙민루, 전시관)으로 향한다.

 

 

임경업 장군비각

인조4년(1626년)에 낙안지역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을 기리는 비(碑)로 정월 보름이면 주민들에 의해 큰 제례가 행해지고 있다. 

 

 

 

 

객사(客舍)- 낙안지관(樂安之館)

왕명으로 오는 사신들과 고을을 찾아오는 기타 관리나  외빈들이 머물다 갔던 곳으로 고을의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로 동헌보다  격이 높아  낙안읍성 내(內) 가장 중앙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객사 왼쪽 놀이마당

 

 

 

낙안읍성의 나무들 

이 곳의 오래된 나무들은 '도기념물 제 13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팽나무(보호수) - 수령 300년  

객사 동쪽에 위치한 이 팽나무는  주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나무들중 하나이다. 시골에 가보면 대부분 마을에서 따로 관리하는 정자나무가 있다. 흔히들 당산나무라고 하는데 옛날 우리나라의 애니미즘(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깃든다는 사상) 사상과 관련이 있다. 주민과 함께 해 온 나무로 동네에서 따로 관리하고 소원을 빌기도 하며 명절에는 이 나무 아래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개서어나무(보호수) 수령 200년 이상

객사 뒷편에 위치

 

 

 

이순신나무(푸조나무) - 400년 이상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할대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거둔 대표적인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낙안군이다. 당시 광양만 예교성(왜성)전투를 앞두고 낙안읍성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이 곳에 있는 푸조나무라 전해오고 있으며, 예교성 전투에서 크게 승전하였다. 

 

 

오래되어 곳곳을 치료하면서도 꿋꿋히 살아있는 이 나무에서 장군의 기개가 느껴진다.

 

 

 

낙안읍성 노거수(老巨樹) - 보호수

살아 있는 역사

 

오른쪽 부터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  모두 300년 이상의 수령이다.

 

 

주 무대

공연이나 행사가 이뤄지는 곳

 

 

꽤 넓은 잔디광장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기 정말 좋은 곳이다.

 

 

 

 

동헌(東軒)- 사무당(使無堂)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관아 건물로서 감사(監司), 병사(兵使), 수사(水使), 수령(守令)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訟事)를 처리하던 곳이다.

 

동쪽은 수령, 서쪽은 관리, 중앙마루는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사용했다.

 

 

천하명당터 (동헌 서쪽에 위치)

금전산을 바라보고 복을 비는 곳

 

 

동헌 뒷편의 굴뚝

 

 

동헌에서 내아로 가는 출입문

 

 

       내아

동헌의 좌측에 위치.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

 

 

낙민루(樂民樓)

낙안읍성 동헌 앞에 있는 낙민루는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3대 명루로, 1986년 낙안읍성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기존 초석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집으로 삼문이 있다. 2층은 중앙에 낙민고가 설치되어 있고, 낙민루 앞에 4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는 곳을 구정 뜰이라고 한다.

 

 

구정 뜰의 느티나무 - 보호수 (수령 400년 )

 

수고: 25m, 둘레: 400cm

 

 

길 양편에 세워진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 오른쪽은 남장승으로 천하 대장군이라 하고 왼쪽은 여장승으로 지하 여장군이라고 한다. 이 곳에는 읍성대장군, 읍성여장군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 

 

 

 

 

자료전시관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 번 둘러 볼 만하다. 

 

 

두 군데의 전시관이 있는데 이 곳은 관혼상제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나가는 길

 

  난전(음식점)

골목길을 걷다가 간단히 음식을 먹었던 곳

 

 

소가 끄는 수레 형상과 쉼터

 

야생화 단지

 

 

 

성 밖의 이야기

 

성에서 나오면 3·1 운동 기념비와 기념탑, 조형물이 자리한다. 보통 보았던 공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마음 한켠 숙연함이 자리한다.

 

 

 

 

 

독립선언서 전문

국어시간 열심히도 외웠던 독립선언서 전문 

 

 

3·1독립선언서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몇 번 방문한 곳이라 둘러보는 동안 그저 우리 동네인양 편안했다. 골목길을 걸으면 누구나 한번쯤 추억에 푹 빠지지 않을까?  옛 정취를 듬뿍 느끼고 낙안읍성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골목 골목과 아름드리 노거수의 역사를 보는 즐거움도 느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