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날: 2023년 2월 12일. 흐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이 곳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들의 체험학습 장소로는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이 공간을 찾는 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서재필 기념공원: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길 8 ( 061-852-2815)
♡ 입장료, 주차비 무료
서재필(徐載弼, 1864.1. 7.~1951.1.5.)은 조선의 문신, 대한제국의 정치인·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의사이다. 만 20세 나이로 갑신정변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서재필은 그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독립문을 만들었으며,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쳤던 이다. 1977년 11월 30일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그가 태어난 문덕면 생가 앞에는 기념공원을 건립하여 추모하고 그의 정신이 살아있는 독립문을 재현하고 유품 8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보성 18번 국도 메타세콰이어길
보성 18번 국도는 메타세콰이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했다. 담양보다 매력있고 훨씬 길다. 그런데 담양이 워낙 유명해서 이 길은 아는 사람만 다니는 옛 길이 되어버렸다. 보성에서 대원사나 순천 고인돌 공원은 이 길로 가는데, 그 길에 있는 서재필 기념공원도 들린다면 더 멋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
메타세콰이어는 사계절 다 예쁜 것 같다. 가을에 이 길을 다시 와야겠다.
보성 18번 국도, 메타세콰이어길 (약 11km)
서재필(徐載弼) 기념공원
서재필이 태어난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 위치한 서재필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전체 면적은 4만 6,000㎡이며 앞에 보성강 중류에 주암다목적댐이 축조되어 형성된 주암호가 있다. 서재필공원휴게소, 조각공원, 보성군 항일독립유공자 추모탑, 서재필기념관 등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독립문과 같은 크기로 만들고, 서재필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던 외갓집인 생가를 2003년에 복원하였다.서재필 기념관의 유물전시관에서는 그의 유품 8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서재필 기념공원 조감도와 선생의 약력이 안내되어 있다.
주차장은 정문에서 20m 정도에 위치
기념관 전경
독립문-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것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서재필 선생께서는 굴욕외교의 상징이었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독립문을 건립하셨다.
(영은문: 1407년에 조선 태종이 사대주의적인 입장에서 조선으로 오는 명나라 사신을 위하여 건립한 대형 문이다. 영은문 주초는 독립문 앞에 남아 있다.)
개화문(開化門)
솟을 대문 형식으로 문짝은 달지 않았다. 현판은 송재(松齋)서재필 선생의 개화사상을 알리는 의미에서 '여초(如初) 김응현' 서예가가 쓴 글이다.
개화문에서 본 선각재(左), 자강문, 선양관(右)
선양관(宣揚館)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으신 30인의 공적을 기록한 곳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호 수훈자가 이승만이었다는 것은 못마땅하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상훈법을 만들어 스스로 첫 번째 수훈자가 되었으니, '셀프 훈장' 이었던 셈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영예로 여겨져야 할 건국훈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등급과 서열로 수여되었다는 점은 서글프다.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이바지한 선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 훈장을 수여함에 국가보훈처의 지침만으로 공적이 계량화되어 평가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개인적인 생각)
선각제(先覺齊)
송재사의 재실
자강문(自强門)
자강문 후면
송재사(松齊祠)
서재필 박사의 영정이 모셔진 곳
송재사 앞 뜰의 나무들은 양쪽이 같은 수종으로 식재되어 있다. 동백, 배롱나무, 소나무 .. 심어진 갯수도 같다.
서재필 선생 동상
서재필 기념관
선생의 유품 800여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선생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찾는 이가 많이 없어서인지 근무자도 없었다.
1전시실
1948년 8월 28일 한국을 떠나기 전 국민에게 당부한 말. 이대로 지켜졌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종이 하사한 프랑스식 탁자와 의자
2전시실
3전시실
4전시실
백성을 일깨우며 외세를 배격하는 그의 활동에 긴장한 일본과 러시아 등의 압력으로 1895년 미국에 돌아갔지만 여생을 모국의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진정한 애국자였다.
태극기 그리기 체험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아이들도 좋아는 곳이다.
학생들이 그린 태극기를 보고 있으니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진다.
서재필 기념관 중앙에 있는 선생의 동상과 쉼터
주암호 조각공원
조각공원은 서재필 기념공원 독립문 오른쪽에 있는 육교를 이용하여 갈 수 있다.
육교에서 바라본 기념공원 전경
주암호 조각공원
주암호 조각공원에는 다양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와 벤치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 휴게소
가볍게 걸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과 함께해도 좋은 곳
주암호가 보이지만 오랜 가뭄으로 물이 말라 있다.
조각공원 주차장
보성군 항일독립유공자 추모탑
서재필 생가
보성군 문덕면 가내길 18-35
서재필 기념 공원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기념공원 정문 도로에 이정표가 있다.
꽤 넓은 주차장이다. 생가 근처에는 주차장이 없으니 이 곳을 이용해야 한다.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친절하게도 길 위에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다.
마을의 집들도 꽤 아기자기한 멋이 있어 보는 즐거움도 있는 길이다.
의미 있는 전시이긴 하지만, 건물 전체를 빙 둘러서 설치한 탓에 건물을 제대로 볼 수 없음이 아쉬웠다.
초당(草堂)
송재(松齊) 서재필(徐載弼)선생은 1864년 1월 7일 이 곳 초당에서 태어났다. 커다란 황룡이 초당옆 큰 바위사이에 있던 뽕나무를 휘감으며 승천하는 꿈을 꾸고서 그 뽕나무 잎을 전부 따서 갈아마시고 선생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당과 뽕나무는 6.25전쟁때 소실되었으나 2003년 새로이 복원되었다.
7세까지 이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선생은 미국에서 생활하다 귀국할 때마다 이 초당의 현황을 자세히 묻고 그리워하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독립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일제 잔재 청산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어진 역사는 아직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그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이러한 시설들이 더 확충되어 교육적으로 잘 활용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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