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영주 소수서원

비사랑 2022. 1. 23. 23:53

2022년 1월 23일 (일) 

 

무섬마을, 부석사, 그리고 소백산 등반을 하고 마지막 일정으로 소수서원에 들렸다. 일요일이였지만 겨울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적하고 편안하게 소수서원을 둘러 볼 수 있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중국 당나라 때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 소수서원은 건립 당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불렸는데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하여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소수(紹修)'라 함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란 뜻으로 학문 부흥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명종임금은 손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꽤 넓은 주차장이 있다.

 

 

 

우리나라 9개의 서원이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원 배치도

 

 

 

매표소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소나무 숲길이 너무 아름답다.

 

 

 

소수서원 소나무 숲

소수서원 소나무 숲은 가지가 축축 늘어지고 키가 커서 낙락장송(落落長松)으로 불리는 소나무 군락으로 수백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운치있게 뻗은 소나무들은 서원에 가까운 것일수록 서원쪽으로 숙이고 있어서 마치 서원에 대한 공경을 표하는 느낌을 준다. 

 

 

소나무는 추운겨울을 이겨내고 항상 푸르름을 간직하는 것이 선비의 기개와 닮았기 때문에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린다.

 

 

 

영주 숙주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 59호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 이라는 깃발을 높이 달았는데 당간지주는 당을 매달았던 깃대 즉, 당간을 고정시키기위한 돌기둥이다. 유교 성지에서 불교유적을 만난다는 것이 이채로운데 원래 이 곳은 통일신라에 세워진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출토된 유물이나 유적을 보면 인근 부석사 못지 않게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절터에 서원이 세워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수서원 은행나무

수령 500년 이상된 나무로 소수서원이 세워질 무렵에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렴정 옆 은행나무

소수서원 은행나무는 학자수라고도 불리는데'은행 열매처럼 많은 인재를 배출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景濂亭(경렴정)

주세붕이 1543년 세운 정자로 내부에는 주세붕과 퇴계 이황 등 당대 묵객의 시판이 걸려 있다. 유생들이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곳이며 풍류와 심신수양의 장소였다. 

 

 


경렴정에 걸려 있는 편액과 시판들 

 

 

 

 

敬자 바위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죽계의 경승을 바라보면 주세붕이 쓴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란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다. 경자는 선비의 덕목을 나타낸 글자로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경자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밤만되면 혼령들이 울게 되므로 연유를 물어본즉, 예전에 단종복위(端宗復位)운동 실패로 희생된 넋들로, 주세붕이 날을 택해 위혼제(尉魂祭)를 드리면서 경(敬)자에 붉은 칠을 한 뒤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敬)은 주자철학의 근본으로 공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로써 원귀들의 한이 위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省牲壇(성생단)

제사에 쓸 제물을 검사하는 단으로 생단이라고도 한다. 소수서원에서는 의식의 순서를 적은 笏記(홀기)에 따라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에 제향을 지내는데 제향전날 선택한 제물을 올려두고 흠집여부를 상펴보던 곳이 성생단이다. 서원의 성생단은 보통 사당 근처에 있지만 소수서원의 성생단은 특이하게 서원의 입구에 있다.

 

 

 

 

志道門

소수서원 출입문. 후대 서원과는 달리 솟을삼문이나 문루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작은 협문을 두고 있다.

 

 

 

서원은 크게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강학영역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앞의 제일 큰 건물이 강학당(보물 1403호)이고, 오른쪽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지락재와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가 위치한다. 강학당 왼쪽으로 장서각이 있다. 건물배치는 하학상달,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한다.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  

 

 

 

講學堂(강학당) 보물 제1403호

강학당은 중종 38년 주세붕이 세운 건물이다.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던 곳이기 때문에 이름을 강학당이라고 하였다. 소수서원의 중심이 되는 검물로 가장 규모가 크다. 향교의 명륜당에 해당하는 곳이다. 앞면 3칸, 옆면 4칸 규몬의 기와짐으로 일반적인 한옥 건물의 옆면에 해당하는 부분을 앞면으로 설정한 특이한 구조이다. 강학당 앞쪽에는 '백운동'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전 이름이다.

 

 

강학당 내부 대청 북쪽에는 명종이 직접 쓴 소수서원 편액이 걸려 있다.

 

 

 

直方齋(직방재), 日新齋(일신재)

동재는 일신재(日新齋), 서재는 직방재(直方齋)로, 양재가 한 채(棟)로 되어있으며 편액으로 구분하고 있다. 원장, 교수 및 유사(有司)들의 집무실 겸 숙소이다.  직장재와 일신재는강학당의 뒤편으로 2칸 정도 물러 있으면서 마루와 방의 높이도 강학당보다 한 단 낮게 하였는데 이는 사람이 거처하는 숙소를 선현들의 학문을 숭상하는 강학당보다 낮추고자 해서이다.

  

 

 

 

庭燎臺(정료대)와 盥洗臺(관세대)

정료대는 밤에 서원을 밝히던 조명시설로 윗부분 석재위에 관솔을 피워 정원을 밝혔다.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를 올려놓는 받침돌이다.

 

 

 

 

藏書閣(장서각) 

서원의 장서각은 나라에서 내려준 책과 서원의 책, 서원에서 출판한 목판들을 보관했던 곳으로 현대의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至樂齋(지락재), 學求齋(학구재)

지락재와 학구재는 원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소수서원의 강학공간에 있는 건물로 2동의 건물이 조금 떨어져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학구재는 옆면 3칸, 옆면 1칸의 구조이다. 중앙에 앞뒷면이 개방된 마루가 있고 양쪽에 각각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학구는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한다는 뜻이나 어린 학생들이 생활하는 장소여서 童蒙齋(동몽재)라고도 한다. 

 

 

지락재는 앞면 3칸 , 옆면 1칸 규모의 기와 집이다. '지락'은 송나라 구양수의 글 중 至樂 莫如讀書(지락막여독서)에서 따온 이름으로 '지극한 즐거움은 독서만한 것이 없다' 란 뜻이다.

 

 

 

 

 

 

제향영역

소수서원은 고려 때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제향공간에는 사당인 문성공묘(보물 1402호)과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다. 사당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후대 서원과는 달리 그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에 사당을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르고 있다. 사당 뒷편에는 안향초상(국보 111호)와 주세붕초상(보물 717호)를 모시기 위한 건물인 영정각을 두고 있다.

 

 

文成公廟(문성공묘) 보물 제1402호

문성공묘는 중종 37년에 주세붕이 안향을 기리기 위해 안향의 고향잉 숭흥에 세운 사당으로 소수서원이 세워지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당에는 '사祠'자를 사용하고 왕이나 나라의 큰인물을 모신 곳에만' 묘廟' 호를 쓰게 하였다. 이를 보면 문성공묘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주자학을 도입한 문성공 안향을 기리고자 격을 높혔음을 알 수 있다.

 

 

 

 

典祀廳(전사청)

전사청은 향사 시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마련하던 곳이다. 제물을 장만하거나 제사를 지낼때 편리하도록 문성공묘 바로 옆에 배치하였다.  주세붕이 중종 37년에 문성공묘를 지으면서 함께 만들었다고 전한다.

 

 

 

 

影幀閣(영정각)

 영정각은 소수서원에서 보관하는 영정을 모시기위해 1975년에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의 기와집이다. 조선시대에는 道東閣(도동각) 또는 影禎室(영정실)이라고 하였으며 안향의 영정을 모셨다고 한다.

 

 

영정각 내부의 중앙좌측에 있는 주자학의 시조인 주자의 영정, 우측에는 안향의 영정 

 

 

 

중앙 왼쪽에는 주세붕의 영정, 문신인 한음 이덕형 영정이 있다.

 

 

중앙에서 오른쪽에는 청백리의 표상인 오리 이원익의 영정과 미수 허목의 영정이 있다. 

 

이 가운데 안향의 영정은 국보 제111호, 주세붕의 영정은 보물 제717호로 지정되었다.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있으며 전시된 영정은 복제본이다.

 

 

 

日影臺(일영대)

일영대는 해시계로 알려져 있다. 맑은 날 윗부분 돌에 꽂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아랫돌에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史料館(사료관)

 

 

소수서원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충효교육관

 

 

 

 

 

서원에서 소수박물관 가는 길

 

 

竹溪水 (죽계수)

소수서원에는 竹溪水(죽계수)가 흐르고 있는데,  죽계수는 멀리 소백산 초암계곡에서 발원한 계곡으로 주변의 바위가 병풍처럼 펼처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백운교

박물관 쪽에서 본 백운목교

 

 

 

 

 

 

光風亭(광풍정)

정자 인근에 광풍대가 있고 광풍대는 퇴계 이황이 명명하였다. 광풍정은 4각 정자로 2002년에 세웠으며 앞으로는 죽계가 감아돌고 뒤로는 연화산이 에워싸고 있어 주변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소수박물관

박물관 전경

 

 

 

      야외 전시장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 선돌과 부사 선정비, 순흥바느레 고분 (아래)

 

 

 

 

    특별기획전시실

 

 

소수박물관 본관

박물관 올라가는 길, 이야기가 있는 청동부조

 

 

 

퇴계이황이  1568년 12월선조 에게 올린 성리학의 주요개념을 10개의 그림으로 나타낸 상소문이다. ‘성학십도’라는 명칭은 본래 '진성학십도차병도 進聖學十圖箚幷圖'로 수록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진(進)·차·병도의 글자를 생략해 <성학십도>로 명명되고 있다.

 

 

 

 

백운동 서원 현판

 

 

 

박물관을 나와서 둘레길을 따라 '취한대'로 간다.

 

 

 

 翠寒臺 (취한대)

취한대는 퇴계 이황 선생이 대(臺)를 세웠으나 오랜 세월로 허물어져 그 자리에 다시 터를 닦아 정자를 지었는데 '취한'이란 뜻은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詩)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비취 "취"(翠)자와 차가울 "한'(寒)자를 따왔다고 한다.

 

 

 

둘레길에 만난 징검다리는 건너는 즐거움과 죽계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 정말 좋다.

 

 

죽계수의 맑은 물

 

 

얇은 살얼음마저 아름답다..

 

 

 

영귀봉

소수서원 왼편에 봉긋하게 올라온 곳으로 거북이가 알을 품는 형상이라고 해서 영귀봉이라 부르는데 영귀봉 위에는 소혼대라고 하여 작별의 정을 나누는 곳이 있는데 서원에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마음이 배어 있는 듯하다.

 

 

 

둘레길을 걷다가 서원 옆 담 쪽으로 올라갔다.

 

 

 

서원이 한 눈에 보이는 곳

 

 

좀 더 올라오면 서원 전체가 내려다 보인다.

 

 

 

 소나무 숲과 서원에서 느껴지는 옛 향기가 편안함을 주고 둘레길의 풍광 또한 아름다운 곳으로 영주 여행에서 빼 놓지 말아야 할 곳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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