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 4.3 평화 공원

비사랑 2021. 5. 4. 21:04

다녀온 날: 2021년 5월3일  날씨: 맑음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일정을 변경해 길을 가던 중 만난 곳이다.

4·3 사건은 대충 알고는 있었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더 이상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사건이다.

얼마전 방송(알쓸범잡)을 통해 잠깐 보았던 내용이 떠올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4·3평화공원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미래를 열어가기위한 평화 인권

기념공원이다.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평화·인권의 의미와 통일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평화와 통일의 성지이자 인권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4·3사건 간단 정리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의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 미국 정부의 묵인하에 벌어진 초토화 작전 및 무장대의 학살로,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4·3이라는 명칭은 1948년 4월 3일에 발생했던 대규모 소요사태에서 유래하였다. 

사건의 배경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복합되어 있어서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자세한 내용과 설명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에 너무 많고 길다.

검색엔진 중 '나무위키'의 설명과 '4·3연구소' 사이트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아는데 도움이 되었다.

보는 내내 분노와 소름돋는 아픔과 함께 '4·3평화 공원'에서 보았던 행방불명인 표석이 떠올라 마음이 힘들었다.

 

제주4·3사건은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철저히 사건을 은폐하고 4·3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조차 금기시켰고 사람들은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채 세월을 보냈다. 사건 발생 50년이 지나도록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시절 사건을 소설과 그림을 통해 공론화 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많은 민간사회단체들의 진상규명 운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2000년 1월 12일 제주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비로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4·3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초석을 다졌으며,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하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평화공원 문주

 

 

평화공원 문주에는 제주4.3사건 73주년을 맞아 4월 2일부터 9월 30일까지 시화전 ‘거기, 꽃 피었습니까’ 가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 작품 수는 총 70편이며, 제주작가회의 회원들만이 아니라 전국 시인들도 함께 참여했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가슴 아려오는 싯구들이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평화기념관은 첫째월요일이라 아쉽게도 휴관이었다. 미리 알고 가면 좋을 듯..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휴관 (휴관일 외 연중 무휴)

♤입장료: 무료

♤관람시간: 09:00 ~17:30 (입장 마감시간 16:30)

 

 

♤작품명: 이젠...

♤작가: 강문석, 서성봉

  4·3을 품은 '한라산'에서 '대지)미래)'로 향하는 과정을 형상화 한 작품

 '이젠(시간적)'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인권, 평화, 통일)로 나아감을 의미함.

 

 

 

 

제주 4·3희생자 각명비

공원의 핵심공간인 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중앙부의 환상(環狀)통로를 끼고 각명비가 들어서 있다. 각명비는 4·3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성명·성별·당시 연령·사망 일시와 장소 등을 간결하게 기록한 것이며, 당시의 마을별 단위로 각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추모를 위한 비석이 아니라, 4·3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죽음의 사실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기념물이다.

 

위령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빽빽히 새겨져 있다.

 

 

 

 

 

위령탑

 

 

제주도의 분화구 형태로 설정되었으며, 그 주변에 네 방위 수호기둥인 현대화된 방사탑을 설치했다. 중앙 연못의 물은 살육의 역사를 정화하는 ‘정화수’이며, 그 중심부에 있는 2인상은 가해자·피해자의 이분화된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어울림을 표현하고 있다. 2인상을 둘러싸는 금속원형의 고리는 인간과 평화의지의 영원함과 완전함을 기원하고 있다.

 

 

귀천(歸天)

이 작품은 어른 남녀, 청소년 남녀, 어린 아기 등 총 5개의 수의를 단순화·도상화하였다. 이는 4·3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한다. 실제 어른·아이 구분 없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사실적이고 설명적인 표현을 벗어나 상징적으로 도식화된 조형미와 죽음의 이미지를 전통수의의 상징성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표현의 간결미와 지역성의 문화특질이 잘 스며든 작품이다.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던 곳이다. 새겨진 수의가 편안한 길로 인도하길 기도했다.

 

 

위령탑에서 계단을 올라 위령제단으로 향했다.

 

 

 

 

위령제단 가는 길에 돌아본 모습. 넓은 잔디광장과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위령제단

 

위령제단 안쪽으로 들어가면 위폐봉안실이 있다. 4.3사건의 희생자를 기억하며 분양했다.

 

 

비석 뒷편에 새겨진 글귀

 

 

봉안실 안에는 당시에 희생된 14.256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신위는 당시의 지역별, 마을별로 배치되어 있어 유족과 방문객이 쉽게 찾아 볼 수있도록 해놓았다.

가슴 먹먹해지는 곳이다. 

 

 

 

위령제단을 나와 행방불명인 표석으로 향했다.

 

 

 

 

 

 

행방불명인 표석

이곳은 제주4·3사건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하여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을 대상으로 특별히 개인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행방불명인들은 대부분 4·3사건의 와중에서 체포되어, 육지부 각 지역의 형무소에 수감된 후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이어 총살되어 암매장되었다. 그 결과 유족과 후손들은 부모와 자식의 사진 한 장 없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헛묘를 세우기도 하였다. 2020년 4월 현재 제주지역 2,063기, 경인지역 556기, 영남지역 445기, 호남지역 398기, 대전지역 270기, 예비검속 221기 등 총 3,953기가 설치되어 있다.

 

 

너무 많아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꾸만 뒤돌아 보는 표정에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렸다.

♤ 조형물 명 : 해원

♤ 작가명 : 고민석 (2008년 설치)

 

 

 

'서천 꽃밭에서 이제랑 편히 쉬십서' 라는 한 줄 문구를 품에 안은 비석이 관처럼 누워있고 그 위에 꽃 아홉송이가 놓여 있다.   

 

 

 

   ... 늙으신 어머님, 처자식의 소식이 듣고 싶사오니 속히 답장하여 주십시오..

 

 

 

모든 글귀 하나 하나가 슬프고 그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에 눈물이 났다.

누구든.. 언제든.. 한번 쯤.. 꼭 이 곳에 서 봤으면 한다.

 

 

 

봉안관

이곳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추진한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발굴된 유해를 봉안하는 장소다.
4·3유해발굴사업은 4·3특별법에 근거해 이루어진 후속사업으로, 발굴기간 동안 유해 405구가 발굴·수습되었으며, 유해 405구에 대해서는 유전자 감식이 이루어져 133구의 유해에 대해 신원확인이 이루어졌다. 현재 봉안관에는 380기가 안치되어 있다.(2020년 4월 기준)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진 못했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제주도의 이국적인 풍광들에 푹 빠져 여행지로서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곳의 아픔을 이제야 보게 되다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4·3사건을 일부러 찾아서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제주에 오거들랑 여행지 오가는 길에 잠깐 시간을 내서 4·3평화공원을 둘러본다면 우리의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넓은 공간에서 소풍처럼 편안하게 쉬었다 가는 평화스러운 곳이 된다면 그 분들의 아픔도 조금씩 아물어 가지 않을까?

 

희생자분들의 넋을 위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평안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