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일 다녀옴, 날씨: 흐림
백제의 고도 공주의 상징인 공산성(사적 제 12호)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웅진백제(475~538)를 지킨 왕성이다.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包谷形)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 쌍수산성으로도 불렀다.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된 공산성에서 시대별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 주차장: 공산성 주차장 이용/ 주차비 무료
⏰ 이용시간 : 하절기(3월~10월) 9:00~18:00, 동절기 (11월~2월) 9:00~17:00(종료 30분전까지 입장),
✔ 휴무일: 명절 당일 및 신정 당일 휴무
▣ 이용요금 : 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온누리 공주시민 가입자 50% 할인)
💙소요시간: 2~3시간(우리는 2시간 소요)
공영주차장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반대편에 여유있는 공간에 주차해도 크게 상관 없는 듯하여 골목 안쪽에 주차를 하였다.
고마열차


• 운영기간(3월~11월): 주말, 공휴일, 백제문화제 기간
• 운행시간: 10:00~10:00. 1일 7회 왕복운영
• 이용요금: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당일 현장발권)
• 운행구간
공산성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승하차장소) → 공주한옥마을 → 국립공주박물관 → 고마나루솔밭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승하차장소) → 공산성
매표소


공산성은 높이 : 3~4m/ 둘레 : 2,500m/ 면적 : 218,717㎡에 이른다.
금서루 입구 비석군(錦西樓 入口 碑石群)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들이다.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와 제민천교영세비 등 47기가 있는데 대다수가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새긴 송덕비이다.
수문병 근무 교대식
세계문화유산인 백제 왕성 성곽을 지키는 수문병들의 근무 교대의식을 재현한 역사문화 프로그램이다.
운영시간: 매주 토,일요일, 공휴일 - 하루 세 차례 운영( 11시, 13시, 15시)

운이 좋았는지 3시에 맞춰서 백제 왕국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고 수문병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공산성 금서루(公山城 錦西樓)

공산성 금서루는 공산성 4개 성문 가운데 서쪽 문루(문 위에 세운 높은 건물)이다. 성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지만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의 문헌 기록과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의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자리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은 것이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서루 왼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금서루 옆 성벽에는 백호 깃발을 걸었다. 바탕색은 황색이나, 깃발의 테두리에는 흰색을 둘러 서쪽을 상징했다.

금강과 다리

공주 금강철교(公州 錦江鐵橋) 등록문화재 제232호, 1933년 건립
공산정(公山城 公山亭)

공산정은 공산성 서북쪽 정상에 있는 정자이다. 공산정 안에 있는 백제 왕궁 관련 유적을 비롯하여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철교 등 공주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공산정에 관한 기록은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으나 18세기 후반의 충청도읍지 공주목 지도를 보면 '후락정(後樂亭)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의 공산정은 1970년대에 새롭게 만든 것으로 이전에는 유신각(維新閣) 또는 전망대 등으로 불렸다. '공산정'이란 이름은 2009년 시민 공모를 거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공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공북루로 내려가는 꽤 가파른 계단길
공산성 왕궁관련 유적

공북루 남쪽의 넓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백제시대 대규모 왕궁 관련 유적지이다. 2011~2017년까지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현재 지표면에서 약 300~700cm 아래에서 백제가 웅진에 천도한 475년 이후부터 만들어진 약 70여 동의 기와 건물지와 도로, 축대, 배수로, 저수시설, 석축, 연못, 칠기 공방지 등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성의 역사를 가늠케 하는 나무
공북루(拱北樓)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쪽 문루로 금강의 남쪽과 북쪽을 오가는 남북 통로의 주 출입문이다. 본래 공북루 자리에는 망북루(望北樓)가 있었는데 허물어져 터만 남아 있었는데 충청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면서 1603(선조 36)에 공산성을 크게 고쳐 쌓았다.

공북루 내부는 마루를 만들어 금강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장소로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공북루에서부터는 깃발의 테두리가 북쪽을 상징하는 검은색으로 둘려있고, 황색 바탕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다.

공산성 공주 잠종 냉장고


겨울철 금강의 얼음을 왕겨에 싸서 잠종 냉장고에 넣어 두면 여름 내내 녹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누에의 부화 시기를 늦추었다고 한다. 공산성 내의 잠종 냉장고가 있는 지역을 '빙고재'라고하는데, <공산지,公山誌>에는 공산성 안에 빙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는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조선시대 빙고(氷庫) 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하루와 연지


영은사에서 만하루 앞 연지로 내려가는 배수구.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산성 연지(公山城 蓮池)

공산성에서 사용하는 물을 저장하던 연못이다.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 기와와 자기조각등이 확인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영은사 앞쪽으로 연못이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이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만하루(挽河樓)

만하루는 연못과 금강사이에 있는 누각이다. 만하루 앞의 성벽은 조선시대에 확장한 것으로 공산성을 방어하는 군사적 기능과 함께 경치를 감상하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가파른 성벽길

휴~ 오르막 끝!
북쪽 정상 쉼터에서 바라보는 풍경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공주대교와 멀리 신공주대교이다.

공산성 명국삼장비(公山城 明國三將碑)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丁酉再亂 - 1597년, 임진왜란 이후 왜군이 다시 침략한 사건)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에 명나라의 세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가 왜군에게 피해를 많이 받은 공주에 들어와 머물면서 주민들을 보호한 업적을 기린 송덕비이다.
공산성 임류각(公山城 臨流閣)

임류각은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500)에 왕궁의 동쪽에 지은 누각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건물로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 공산성 발굴 조사 과정에서 고층 누각의 모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2층 누각으로 다시 세웠다.


현재의 임류각은 백제 건축 양식인 하앙식(下昻式)을 재현하여 세웠으며, 단청 문양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장신구와 무덤방의 벽돌에 남겨진 무늬를 활용하였다.
*하앙식 - 지붕 처마의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더 설치하여 처마를 길게 만든 구조로 건물의 웅장함이 돋보임.

광복루(光復樓)

공산성 광복루는 공산성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있은 2층 누각이다. 공산성 안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이라 하였다.1945년 광복 이후 공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보수하였고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김구, 이시영 등이 공주를 방문하여 이곳을 둘러본 후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광복루'로 고쳤다고 한다.

걸어온 길
토성(土城)길



동쪽 성벽은 토성으로 만들었다.
영동루(迎東樓)

영동루는 공산성의 4개 성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밑부분 구조를 확인하였다. 문터 옆 양쪽에서 원래의 문을 지탱하는 돌이 그대로 발견되었고 <공산지,公山誌>의 2층 3칸 건물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동문의 누각을 복원하였다.


백제인들이 산위에 왕궁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벽은 밖에서 오르지 못하게 쌓고(치성雉城), 남북에 두 개의 문루와 적에게 보이지 않는 출입문(암문暗門)을 만들었다. 공산성 옆의 공주 옥녀봉성은 흙으로 쌓은 성(퇴뫼식)으로 공산성의 보조왕성의 역할을 하였다.

동쪽을 상징하는 청룡기

울창한 숲 사이를 걷는 석성(石城)길

남쪽을 상징하는 붉은색 테두리를 두른 황색 바탕에 주작을 그려 넣은 깃발로 바뀐다.
진남루(鎭南樓)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며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건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關門) 이었다.


공산성 추정왕궁지 발굴조사

공산성의 보존·정비를 위한 학술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출입이 되지 않았다.

편안하게 산책하기 너무 좋은 길이다.
쌍수정(雙樹亭)

쌍수정은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李适)의 난을 피하여 일시 파천(播遷) 했을 때 5박 6일간 머물렀던 곳이다. 쌍수(雙樹)에 기대어 왕도를 걱정하던 인조가 평정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이 쌍수에 통훈대부(通訓大夫)의 영을 내렸다는 유래가 있다.


서문인 금서루가 보인다.
성 안쪽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어 잠시 쉬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공산성 맞은편 회전 교차로에 세워진 백제 25대 왕 무령왕 동상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산성은 웅장함과 소박함, 고즈넉함이 함께 하는 힐링의 길입니다. 눈을 즐겁게 하는 금강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드리 나무들이 선물하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멋진 곳입니다. 백제 역사문화탐방의 감사한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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