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가을 가득한 날에 다녀옴
광한루원은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조성한 대표적 관아정원으로 대한민국 명승 제33호이다. 조선 세종 조에 황희가 처음으로 이곳에 광통루를 지었으며 정인지가 광한청허부라 칭한것에 연유하여 광한루가 되었다. 선조 조에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광한루 앞에 요천의 물을 끌어들여 은하수를 뜻하는 못을 파고, 네 개의 반월형 교각으로 된 오작교를 놓아 정원을 조성하였다. 봉래, 방장 두 섬에는 대나무와 배롱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작은 정자인 영주각을 세웠다. 춘향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진 뒤 1920년 이후 광한루원 내에 춘향전과 관련된 시설이 들어섰다.
광한루원 기본 정보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
♠ 문의처: 063-620-8901
♠ 휴무일: 연중무휴
♠ 주차료: 2,000원 (광장주차장, 서문주차장)
♠ 이용시간, 입장료


광장주차장

주차를 하고 정문 매표소로 향했다.

입장료의 50%는 남원 사랑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광한루원 정문 청허부(靑虛府)




옥지환(玉指環) 조형물

춘향이 몽룡과 이별할 때 준 정표이기도 하며, 암행어사로 출두한 몽룡이 춘향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할 때 쓰였던 정표의 상징물로써 굳은 언약을 나타낸다.

팽나무

명종 13년(서기1558년)에 심어졌던 것으로 광한루원 조성전 옛 '남산관' 마당에 정원수로 있던것을 기증받은 것이다.
영주섬과 영주각(瀛洲閣)






오작교(烏鵲橋)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바로 그 다리이다. 1461년(세조 7)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오작교를 함께 건너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려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오작교에서 보는 광한루
광한루원 앞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호수 속의 3개의 섬(삼신산), 그리고 서편에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로 구성되어 있다. 오작교는 평교지만 교각의 형태가 원형으로 된 홍예교로 누정원을 구성하는 구성물의 일부로 처리되어 있는데 직선적이고 평탄한 노면에 율동감을 주어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호수에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을 고이는 돌인 지기석을 넣고 견우가 은하수를 건널 때 쓰는 배인 상한사를 띄워 칠월 칠석의 전설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상징한다.

멋진 수형의 나무
비석군

남원 여기저기에 있던 비석들을 모아둔 곳, 남원과 관계있는 부사, 관찰사, 어사 등의 사적비와 선정비가 대부분이다.

광한루(光寒樓)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 보물 제281호다. 1419년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며 용성지(龍城誌)로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광한루 오르는 곳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광한루 현판은 신익성(申翊聖)이 호남제일루·계관·영주각의 현판은 1855년(철종6년) 부사 이상억(李象億)이 본관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으며 이 중 계관 현판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姜大炯)이 다시 썼다.

그림이 되는 풍경
계관(桂觀)편액

달나라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고 한다. 1930년 광한루를 보수할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쓴 글씨이다.

호수는 현재 상태에서 1:2의 비를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 3개의 섬이 동서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 자라가 동남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어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의 구성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하고 있다.


누각에는 83점의 편액이 있는데 김종직( 金宗直), 정철( 鄭澈), 정인지( 鄭麟趾), 강희맹( 姜希孟) 등의 시가 있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자라돌(鼇石)

선조15년 관찰사 송강 정철이 삼신산을 조성하고 난 뒤 남원에 자주 재난이 일어나자 여기에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을 지켜보게 했더니 그 뒤로부터 재난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광한루원은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와 더불어 하늘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왕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ㆍ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삼신산

신선이 살고 있는 전설속의 삼신산을 섬으로 만들어 조성하였다. 왼쪽섬이 영주산, 가운데는 봉래산, 오른쪽 오작교 옆에 있는 섬이 방장산이다. 섬과 섬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육각의 방장정이 지어져 있다.

이 곳에서 보는 광한루는 정말 예술이다.
방장정(方丈亭)

방장정의 근원은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방장정은 1963년도 부터 시작된 광한루원 확장 정화계획에 따라 건축되었다.

이곳은 삼신산의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 중 방장에 해당된다.1칸 6자 6각의 규모이다.


광한루원은 근세 전기에 조영된 대표적인 정원으로 꼽히고 있는데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이 탄생하는데 모체가 되고 있으며 정원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질적으로 우수하고 통시대적 문학사에 나타난 정원양식을 표현하고 있어 전통예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영주각(瀛洲閣)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방장섬에는 녹죽을 심었는데 영주섬에만 영주각을 건립하고 섬과 섬사이를 사다리꼴 다리로 연결하였다.

![]() |
![]() |
영주각 내부






오랜세월을 가늠하게 하는 버드나무

나룻배는 사진을 위한 조형물이다.

수양버들과 단풍나무
완월정(玩月亭)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한 폭의 그림같은 반영이 정말 아름답다.

월매(月梅)집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그네를 타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하여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 집은 후에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이다. 춘향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 하였다.

춘향, 몽룡 조형물 앞에 항아리에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상업적인 공간. 옆에는 동전 교환기까지 있다.

조선시대 평민 주거 형태를 복원한 초가집으로 흙벽, 초가지붕, 낮은 기단 등에서 서민가옥의 소박함과 정취를 느낄수 있다.
장원급제 기원단

춘향이 옥에 갇혔을때 월매가 몽룡의 장원급제를 기원했던 곳
부용당
![]() |
![]() |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장소

춘향관

입장 시간: 09:00~17:30



춘향관 옆으로 낮은 동산으로 올라가면 꽤 멋진 풍경과 마주한다.



한시(漢詩)길

춘향관 뒤편으로 가면 한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조선시대 대표 한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로, 고전의 정취와 함게 문인들의 시심(詩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예인길


북문과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


상가 뒷길
맑은 연못과 광한루, 오작교,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살아 숨쉬는 광한루원은 가을이어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가을을 듬뿍 느낀 하루 오늘도 감사하다.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완도 수목원(국립난대완도수목원)에서의 힐링 (26) | 2025.12.05 |
|---|---|
| 구례 오산 사성암(四聖庵) (31) | 2025.12.02 |
| 천불천탑의 신비 화순 운주사, 운주사 문화관 (25) | 2025.11.05 |
| 담양 소쇄원 탐방 (32) | 2025.09.30 |
| 담양 용마루길 (담양호 둘레길) 트레킹 (34) | 2025.09.25 |



